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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러분 제2의 인천상륙작전을 아시나요~~ 

- 인천시민도 잘 모르는 제2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 아 어찌 잊으랴 6,25는 북한이 남침한 사건이다.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판도를 뒤엎고 대한민국을 구해낸 작전이자 세계의 유명한 작전중에서도 손꼽히는 작전이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안은 또 하나의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만큼 기억이 되길 바라는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몰라서는 인천시민 아니 대한민국국민이라 할 수 없다.


1951년 1월4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등에 엎고 수도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UN군이 한국-중국령 만주 국경을 향해 북진하던 중 중국에서 내려오는 중공군의 대공세로 인해 국군과 UN은 서울을 다시 내주고 북위 37도선인 평택-삼척선 까지 밀렸다.


중공군의 예상못한 한국전쟁 참전은 눈앞에 다가왔던 통일의 꿈이 무너졌다. 


미 제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다시 인천을 탈환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작전을 지시했다. 그렇게 2월3일 백두산함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는 인천항 안으로 돌입해 월미도 전방 1000m 지점에서 북한군의 포대와 초소에 포격을 했다.( ※ 백두산함 해군장교 부인들이 바자회를 운영하고 장교는 월급의 10% 병조장은 7%하사관과 수병원5%씩 모으고 국민까지 모금한 자금으로 구입한 해군 유일의 군함이다.)미국과 영국 순양함,구축함 등도 백두산함과 함께 북한군 진지를 포격했다.


그런데 포격으로 살펴보니 인천항에 주둔해 있던 북한군의 포대의 위치와 화력 규모가 그리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고 작전은 상륙작전으로 바뀌게 되었다.그리고 2월10일 D-DAY로 정하고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2월10일 D-DAY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군 함대가 포격을 가해 탄막을 만드는 동안 100여 명의 우리나라 해병대가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해야 했는데 해병대가 기상악화로 인천 외항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백두산함의 노명호 함장과 김종기 소령은 만조시간을 놓치면 안되다고 판다해 인천 외항에 집결한 각 함정의 수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총 70명의 특공대로 구성된 상륙부대를 긴급 편성했다.

 

 

그리고 오후 5시 미국과 영국의 함정의 함포사격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됐다. 1시간 뒤 함정승조원으로 편성된 특공대 70여명은 만석동해안으로 상륙을 김행했다. 당시 특공대를 지휘한 김종기 소령은 지난 인천상륙작전 당시 해병대 제2대대를 이끌었기에 만석동 해안 지리에 익숙했다.


치열한 전투가 펼치던 오후 7시 뒤늦게 도착한 100명의 해병대까지 만석동 해안에 상륙했고 전의를 상실한 북한국은 방어를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도주했다. 오후 9시에 목표했던 기상대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제2차 인천상룩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이로인해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는 소규모 상륙부대로 작전을 수행해 인천과 서울을 재탈환하고 38도선 진격의 발판이 됐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전공을 현양하기 위해 2016년1월부터 전승비 건립계획을 추진했고 2017년11월15일에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이 인천 중구 월미공원 맥아더길 입구 대한제분 에서 거행됐다.